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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우 옛집에서 '김우영 사진, 우리 것을 담다'

  • 작성자 사진: Hyejung Lee
    Hyejung Lee
  • 2023년 8월 6일
  • 4분 분량

정연심 - 홍익대학교 교수, 비평 및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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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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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김우영의 사진, 한국미에 답하다 김우영은 지난 20년 동안 광활한 자연이나 캘리포니아의 옛 건물 등 특정 타입을 중심으로 한 유형학적 사진을 전시해왔다. 먼 오지를 향한 여정만큼 그는 대상을 오랫동안 관찰하면서 자신의 시선과 대상을 동화시키는 '시간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왔다. 김우영은 특정 장소에 가서 잠깐씩 구경하고 관찰하는 방문객이 아닌, 일종의 거주자이자 인사이더로서의 시선을 사진에 담아왔다. 그러한 작업들은 지나치게 주관적인 것도 아니고 다큐멘터리적인 객관성을 동반하지도 않는다. 김우영의 작업과정을 살펴보면, 사진이라는 매체(medium)는 회화적인 터치를 연상시키듯이 편집 작업을 거쳐 비로소 완성된다. 사진의 표면에는 건물의 프레임, 아스팔트 길 등으로 우연히 생긴 점, 선, 면이 항상 존재한다. 또한 표면의 흔적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 이것은 회화적 마티에르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최근 박여숙화랑에서 전시된 김우영의 사진도 이러한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나는 그의 사진을 모노크롬 페인팅의 흐름과 조우한 '사진예술'로 파악했다. 최순우 옛집에서 열리는 김우영의 사진전은 그간의 궤적을 이어가면서도 그가 그동안 찍어온 대상이나 전시해온 공간과는 차이를 둔다. 김우영이 수년 동안 국외에 체류하면서 느낀 디아스포라(diaspora, 이산)는 멀리서 바라본 한국성, 한국미학에 대한 화답으로 전달된다. 아니, 해외에 나가서 체류하다 보면 내가 본래 가졌던 것, 내가 잊고 있던 것들이 매순간 우리의 머릿속에 되돌아온다. 김우영에게 '우리 것'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한국적인 것이란 무엇일까. '우리 것'을 담기 위한 김우영의 첫 번째 조우는 한국의 미술사학자였던 최순우(崔淳雨 1916-1984)와의 '상징적' 만남이다. 최순우는 한국의 미술에서 우리의 미학을 파악하고자 애썼던 인물이다. 그가 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 그리고 사후에 그의 글을 모두 묶어서 출판한 앤솔로지에 해당하는 『최순우 전집』 등에는 우리의 것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들이 베여있다. 그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었다. 한국의 목공예, 자기, 가구 등에서 느낄 수 있는 소박한 아름다움은 아취(雅趣)의 정서 등과 함께 우리의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김우영은 지난 1년 동안 한국의 사찰과 서원을 찾아다니면서 카메라 렌즈 안에 한국 특유의 풍광을 유형학적으로 담아내려고 노력하였다. 카메라는 렌즈가 있는 한, 피사체를 찍는 사람의 시각이 확연하게 드러나기 마련이다. 렌즈에 들어오는 것과 배재되는 것, 그 경계에서 김우영은 렌즈 안에 담았다가 버린 것들이 더욱 많았을 것이다. 그는 계절의 추이에 따라 한국의 사찰 등을 답사했지만 다른 예술가나 사진작가들이 본 한국적인 것에는 마음을 두지 못했던 것처럼 보인다. 수많은 절을 돌아다녔지만 그는 특정 사찰의 다큐멘터리적인 사진 속에서는 최순우의 궤적에 화답할 수도, 자신 스스로의 답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가 발견한 우리의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II. 김우영의 사진이 담아낸 '공(空)'의 미학 어느 겨울, 사찰을 무수히 많이 찍으면서 그가 본 것은 흰 대지 위에 슬며시 보이는 한국 건축의 여백이었다. 보일 듯 말 듯, 흰 눈 사이로 보이는 자연의 흔적과 인간 문명의 역사를 보여주는 건축의 선들은 서로 만났다가 떨어져 있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사진들은 흑백 모노크롬처럼, 흑백 사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컬러 그대로를 살려낸 리얼한 풍경의 모습이다. 이전의 작업에서 김우영은 디지털 사진을 찍은 이후, 표면의 흔적을 살리기 위해서 컴퓨터에서 편집 과정을 거쳤지만 이번 작업은 이러한 과정 또한 많이 절제되어 있다. 그리하여 눈 덮인 겨울의 풍경은 마치 백지처럼 하얀 여백을 떠오르게 하며, 이는 있는 것들을 비워나가는 수행의 자세이자 공(空), 그 자체를 보여주는 우리의 삶과 연관되어 있다. 김우영에게 겨울에 본 풍광은 눈이 올 때 더욱 도드라지며 이는 곧 백지의 느낌, 비어있는 정취를 연상시킨다. 본래 공(空)은 '존재의 본질적인 개방성'을 나타내는 불교의 핵심 용어로써 날줄과 씨줄이 얽히고설킨 상호관계성(sunyata, 空)을 의미한다. '공'은 우리가 생각하듯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열린 관계성 속에서 무한한 창조가 가능하다는 것을 뜻한다. '공'을 아무것도 없는 공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상호 연결되어있고 함께 호흡하는 지점들을 엮어내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공간은 사물과 사물이 중중첩첩으로 걸림이 없이 융통에 이르는 사사무애(事事無碍)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 점에서 김우영이 바라보는 '우리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이면서도 새로운 시선으로 담아낸 그릇 같은 역할을 한다. 그것은 사진을 통해 조우한 한국의 미이면서도 디아스포라를 경험한 아웃사이더가 바라본 타자화된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니 최순우의 한국미를 통해서 김우영이 두 번째 만난 조우는 바로 눈 덮인 한국의 겨울 풍경으로, 공(空)에 대한 미학적 사유는 바로 그의 작품 자체인 사진 안에서 일어난다. 김우영의 이전 작품에서 익숙하게 보았던 선과 면이 우리나라의 풍경에서도 유사하게 등장한다. 마당과 실내 공간을 이어주는 '사이 공간' 역할을 하는 마루, 사찰의 목어(木魚), 돌로 이뤄진 담장, 수려한 곡선미를 자랑하는 기와의 흐름은 드로잉, 혹은 수묵화에서 느낄 수 있는 단아한 조형미를 발견하게 한다. 미니멀리즘이 서구 현대미술의 사조가 아니라 마치 우리의 전통미술 속에 이미 내재된 한국미였음을 확인시켜 준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사진을 인화하는 종이 또한 김우영에게는 새로운 도전이 되기도 했다. 핸드메이드로 세심하게 만든 한지에 인화했을 때 오는 흡수되는 느낌은 수묵화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설경(雪景)의 모노크롬을 제거하는 효과를 보여준다. 특히 대청마루에 설치된 대형 '병풍'(188x150cm)은 이러한 시각효과를 증가시킨다. 이번 사진들은 갤러리 공간에 수동적으로 '전시'되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통해' 최순우의 옛집에 한국의 자연을 들여오는 사진적 '인 시튜(in situ/on site)' 작업이다. 라틴어인 '인 시튜'란 본래 그 장소에 있던 맥락을 강조할 때 사용하는 용어이다. 현대미술에서는 본래의 장소성을 탈각하지 않고 작품이 놓인 장소성과 작품, 그리고 관람자가 교감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바깥채와 안채, 뜰로 구성된 최순우의 옛집이라는 전통 공간에 동시대 매체인 사진을 전시하면서 김우영은 사진의 맥락만 강조하던 갤러리나 미술관의 전시 방식과는 차별화시킨다. 이를 위해 작가는 전통 한옥의 장소성(site)을 고려해 사진에 담긴 이미지와 전시 공간의 장소성을 서로 연결시키는 방식으로, 사진을 평면 매체로만 인식하지 않고 공간 속에 놓인 설치적 관점으로 전환시킨다. 최순우 옛집의 뜰에는 소나무를 비롯해 감나무, 밤나무, 단풍나무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러한 한국의 자연은 사진 속의 '재현된'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예를 들면 뒤뜰에는 은은한 소리 효과와 더불어 '돌'을 찍은 사진을 함께 설치하여 순수 자연과 '유사(재현된) 자연'을 함께 병치시킨다. 관람자들은 이곳에서 순간적으로 함께 동화되는 교감을 느낄 수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소형 사진이 아니라 회화적인 예술사진의 스케일을 강조한다. 한국의 미를 재해석한 동시대 한국 미술가들은 무수히 많지만 김우영의 예술사진은 눈 덮인 겨울 풍경 속에 우연히 발견한 '비어있는' 아름다움이다. 그것은 새로운 것들을 무한히 담아내는 생성의 공간이자 포용의 공간, 사사무애(事事無碍)의 정신을 반영한 공간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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