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선.면: 김우영의 '면'화
- Hyejung Lee

- 2023년 8월 6일
- 4분 분량
이지윤_미술사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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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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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다큐멘터리적 기록의 강력한 기능으로 인화 기술의 연구와 치밀한 공예적 완벽성을 추구하며 발전하여 왔다. 또한 사진은 미술사적으로도 매우 흥미롭다. 각 시대의 예술가들은 언제나 새로운 미디엄에 먼저 눈을 뜬다. 인상파의 작품들은 세상을 마술처럼 재현해주는 사진기의 확대로 더욱 새로운 회화의 영역을 만들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이 현대미술 맥락 안에서 따블로(tableau)로써 자리를 잡게 된 것은 독일의 번&힐다 베허(Bernd and Hilla Becher) 부부작가가 1971년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의 교수로 부임하고 당시 새로운 개념미술과 함께 성장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당시 조셉 보이스와 함께 독일의 중요한 개념미술을 체계화하던 쿤스트 아카데미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중요한 사진작가 군단을 만들어 냈다. 그들은 '새로운 객관성(new objectivity)'이라는 개념에 근거한 사진을 시작으로 사진 미디엄의 따블로성의 작품을 창작하였다. 베허 부부는 1970년대 뉴욕 현대미술관에서의 'Information' 전시, 1972년 독일 카셀 도큐멘타의 초청 전시로 본격적으로 현대사진미술을 소개하였고, 그들의 제자인 토마스 스트루스, 토마스 러프, 안드레아 구르스키, 칸디다 호퍼로 이어지며 새로운 사진의 영역을 열었다.
또한, 미국을 중심으로 시작된 소위 '픽쳐 제너레이션(Picture generation)'이라고 하는 작가들 - 자신의 퍼포먼스로 사진 작업을 한 신디 셔만, 자신의 회화나 조각을 찍어서 남기는 리처드 프린스, 대형 라이트 박스와 대규모 스테이징 사진을 시작한 제프 월 등이 사진을 더 넓은 의미의 중요한 예술적 미디엄으로 발전시켰다. 그들은 이제 우리에게 너무나도 민주화되고 일상이 되어버린 '사진'이라는 21세기의 미디엄이 '작가' 들의 치밀한 통찰을 통해 어떤 예술로 창조될 수 있을까를 질문하며 더욱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점: 우연한 만남
사진이 어떻게 따블로(tableau)가 되었는지에 대한 프롤로그의 짧은 고찰은 이번 김우영의 작품을 논하기 위한 간략한 서문이다. 대단히 성공적인 상업 사진가였던 김우영이 새로운 예술적 자세로 시작한 작품들, 그것들을 과연 어떤 태도와 시각으로 접근했을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맥락이다. 그는 홍대 도시계획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홍대 각 디자인과에 들어가 사진을 접하게 된다. 이후 1990년 30세가 넘어 뉴욕 School of Visual Arts로 유학을 떠난다. 우연한 기회에 유명한 제임스 무어라는 패션 포토그라퍼와의 만남으로 뉴욕에서 패션 매거진 KGB의 사진 작업을 맡게 되었고 이후 1994년에 한국의 HIM이라는 남성지의 창간 작업을 하게 된다. 그는 당시 흔하지 않은 에디토리얼 개념의 패션 사진에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약 5년간 광고와 패션 사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며 놀라운 상업적 성공가도를 달린다.
하지만 본인이 하고 있던 작업에 대한 회의와 무력감에 부딪치게 되면서 더 이상 광고사진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이후 3~4년간 딜레마의 시간을 보낸다. 그의 방황은 하와이를 거쳐 북미 대륙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리고 3년간 대륙을 다니며 아주 제한적인 표준렌즈만을 가지고 도시를 찍기 시작했다. 그는 '나는 당시 아주 심오한 새벽빛에 심취했고 진화하는 도시의 빈 거리에서 운명적 순간을 만났다' 고 토로한다. 그리고 그의 관찰은 시작되었다.
선: 일련의 시간
김우영의 작품 안에는 정지된 시간이 있다. 버려진 도시의 풍경 - 미국 디트로이트, 캐나다 몬트리올 등 - 작업의 제목에는 장소가 알려져 있지 않다. 작업의 제목에는 단지 '몇 번가 어느 스트리트'라는 것 이외의 정보는 부재한다. 당연히 사람도 없고 사진 안에 있을 법한 빛의 방향과 움직임도 찾을 수 없다. 단지 알 수 있는 것은 이 피사체가 어느 도시의 한 거리이며, 이 거리는 마치 빈 무대처럼 작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하다.
작가는 포토샵을 전혀 개입시키지 않고 거리를 찍는다. 사실 작품에 찍힌 거리가 그저 작가에 의해서 '발견된' 거리라는 말을 들을 때 까지는 정말로 이런 장소가 존재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대형 색면화들로 구성된 그의 사진은 놀랍게도 하드에지 추상화와도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작가는 피사체를 바라보는 일정한 시점에 카메라의 위치를 고정시키고 매우 중립적이고도 객관적인 태도로 물체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뒤샹의 레디메이드 오브제처럼 작가는 이 특정적 장소성을 담은 채 묵묵히 거리를 '기록' 한다.
이 작품을 단지 다큐멘터리 사진이라 할 수 없는 것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선 제한된 객관적 상황에서 작가의 눈으로 찾은 매우 건조한 매력과 예술성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새로운 객관성(new objectivity)' 이 김우영의 강렬한 도시 색면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우연히 만난 도시의 한 장면 장면을 집요하도록 반복적 고찰을 통해 작가적 상상으로 논리화된 겹겹한 시간을 발견하고 그 공간을 찍는 것이다. 즉 있는 기록적 공간과 현실을 넘어서는 작가적 강력한 시선이 그러한 긴장감과 완벽성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면: 중첩적 시간의 반풍경(Anti Landscape)
김우영은 2015년 '혜곡(兮谷) 최순우 선생님의 집' 전시 초청으로 한옥 시리즈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여기서 한옥의 벽면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 벽들은 몇 남지 않은 귀한 한옥의 벽들이다. 시간이 묻어 있는 이 벽들은 처음 그 집들을 지을 때 사용된 표정이 있는 나무 선이 보이는 벽이다. 그 벽을 이루는 기둥들이 만들어 내는 선은 살아있는 한국의 해학적 미를 진득하게 보여주는 귀한 선들이며 작가는 이 벽을 작품으로 담았다.
여전히 이 벽 작품들도 도시 거리의 사진과 같이 어디에 있는 한옥인지, 또한 집의 어느 부분이며 언제 몇 시에 찍었는지를 읽을 수 있는 열쇠는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 작품 또한 작가의 논리와 생각에서 치밀하게 계산되고 제작된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한옥을 컬러 사진으로 찍어보니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한옥에 가장 어울리는 색이 흑백이라는 생각에 지난 2년간 언제나 겨울에만 본 작업을 하였다' 고 한다. 여전히 그는 그 피사체의 본질을 매우 객관적이고 단순한 개체 정보들만의 기록으로 보여주고 있다. 즉, 현실의 색채적 체계를 독자적으로 조절하여 자연 색체 체계 안에서 자신만의 언어로 바꾼 것이다. 그래서 컬러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흑백사진과 같이 이 한옥들의 면이 은유를 발하며 새로운 이미지로 탄생된 것이다.
도시의 3차원적인 시간이 묻어진 벽, 바닥, 공간들 그리고 한옥의 벽들은 모든 일루젼으로 개입되는 시각적 불순물들이 제거되고 다시 김우영의 언어로 정제되어 새로운 아름다운 '면' 화를 만들었다. 그래서 도시의 벽은 추상화와 같은, 한옥의 면은 서예와도 같은 선과 면으로 이루어진 또 다른 동양화의 아우라를 만들어 낸다. 그의 면화들이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의 사진이 낭만적이고 시적인 표면적 미학에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블랙 휴머와도 같은 표면적 미학을 넘어서는 어두운, 비관적 풍경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 보인다. 작가에게 발견된 레디메이드 도시 벽들은 오랫동안 버려지고 사람들이 살지 않은 빈 공간들이거나 여러 번의 복구 작업을 통해 층층이 겹을 이룬 색, 면, 벽들이다. 한옥 또한 마찬가지다. 원본의 한옥은 이제 거의 남아있지 않다. 김우영은 전국을 다니며 우리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귀중한 한옥의 벽들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휘어지고 구부러진 채 오랜 시간 살아남아 온 한옥의 화석과도 같은 표정들을 담아낸다. 이는 외로운 정지된 시간이 아닌 다소 냉소적이고 비관적인 인류의 발전과 남겨진 것들에 대한 작가적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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