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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어루만진 도시 풍경

  • 작성자 사진: Hyejung Lee
    Hyejung Lee
  • 2023년 8월 6일
  • 3분 분량

한예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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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016 ASIANA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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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위에 생명을 입히다. 가로 2m에 가까운 커다란 사진들. 그 안에 담긴 것은 도시 풍경이다. 늘 지나치지만 미처 눈에 띄지 않는 건물들. 사진작가 김우영은 버려져 사용되지 않는 건물에 마음을 준다. 여기서 ‘마음을 준다’고 하는 근거는 그의 사진 속에 있다. 건물 외벽에 엇박자로 더해진 페인트 자국 하나, 낡은 쇳덩어리를 갉아먹고 있는 녹의 결, 창공을 향하고 있는 반듯한 지붕 라인. 사진 속에서 무엇 하나 주인공 아닌 것이 없다. 그렇다. 작가는 도시 언저리를 지키고 있는 소리 없는 건물들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잡아낸다. 원하는 사진을 얻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로지 빛. “제가 기록하는 것은 빛입니다.” 그는 건물 표면을 평평한 캔버스 삼아 계절과 시간에 의해 변화하는 빛의 모습을 찍는 셈이다. 여기에 비밀이 하나 있다. 그의 사진은 발색력이 무척 높은데, 그 이유가 바로 물이다. 대기가 잠에서 채 깨어나지 않은 축축한 새벽, 그리고 비 내리는 날이 그가 가장 선호하는 촬영 시간이다. 그는 빛을 붓으로 삼고, 습도로 색의 농담을 조절하며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사진을 남긴다. 답을 찾아 헤맨 시간 시계는 1989년으로 되돌아간다. 당시 김우영은 이미 서울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난 후였지만 순수사진을 하기에는 열악한 한국의 상황을 보고 비교적 늦은 서른 살의 나이에 뉴욕 유학을 결심한다. 그리고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에서 학부부터 다시 사진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패닉이었다. 수업은 알아듣기 어려웠고 자괴감에 눈물도 엄청 흘렸다. 그러다 학교 밖으로 나서면 뉴욕의 스카이라인이 너무 아름다워 또 눈물이 펑펑 났다. 감성도 열정도 뜨거웠다. 그는 허구한 날 학교에 학교에서 밤을 새웠다. 밤 10시면 학교는 모든 출입구를 폐쇄했고 그때부터 밤새도록 인화를 하고 아침이 되어 학교에서 문을 열어주면 학교를 나섰다. 작업 끝낸 인화지 몇 장을 품에 안고서. 청소차가 거리를 활보하는 도시의 시작을 바라보며 소호의 집을 향해 걸어가던 그때, 그 무수한 아침. 당시의 ‘살아 있다’는 느낌은 지금까지 그가 작업을 놓지 않게 만든 원동력이다. 이 특별한 학생의 작업은 학교 교수들에 이어 총장에게까지 소문이 나고 그는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원까지 마칠 수 있었다. 그런데 이후 삶이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졸업을 앞두고 있던 그를 한국에서 찾아온 손님이 있었고, 그 손님은 새로 창간할 잡지의 아트 디렉터로 그를 초빙했다. 1996년이었다. 그때는 아직 한국에 비주얼 뛰어난 잡지의 세계란 것이 없었다. 처음엔 1년을 생각하고 귀국했다. 그런데 이어 패션, 뷰티 브랜드의 광고 일이 엄청나게 들어왔다. 당시 내로라하는 브랜드는 모두 그의 화보와 광고 작업을 거쳤다. 촬영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앞만 보면서 5년을 보냈고, 딱 그만큼의 시간이 지나니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어 버렸다. 처음 의도에서 너무 멀리 와버린 걸 깨달았다. 다시 사진을 예술로 접근하려니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 같아 두려웠다. 그 방황의 시간 동안 아름다운재단의 전문성 도네이션에 사진으로 참여하고, 히말라야 원정대에도 참여하고, 도시 개발의 그늘 속에서 살아가는 포이동 사람들의 사진으로 전시를 여는 등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려고 노력했다. 사진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또 다른 발견이었다. “근데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안 되겠더라고요.” 그렇게 또 5년이 흘렀다. 다시 길 위로 다시 백지 상태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막상 돌아간 뉴욕에서도 마음처럼 일이 풀리지 않았다. 너무 복잡하고 치열했다. 답이 안 나오는 상황에서 여행을 했다. 대륙 횡단을 몇 번. 그러다 캘리포니아를 만났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빛이 있었고, 그에게 가장 절실했던 여유가 있었다. 여기서라면 세상의 기준에 나를 맞추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순수 사진작가 김우영을 다시 일으킨 게 도시 풍경을 담담하게 그려낸 ‘길(Boulevard)’ 시리즈다. 그런데 이게 우연일까? 1979년, 첫 번째로 사진기를 들고 찍기 시작한 게 ‘도시’였다. 1989년 유학길에 오르기 직전 공간 화랑에서 연 첫 개인전의 주제 역시 도시였다. “그동안 다양한 경험을 했으니 (피사체와의) 소통 면에서는 무언가 많이 달라져 있겠지요. 하지만 처음과 (주제를 대하는) 입장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더라고요.” 스스로도 신기한지 재차 강조하는 그의 말에는 상황을 끝까지 밀어붙여 아쉬움을 남기지 않은 자의 안정이 담겨 있다. “사람이 모이면 집이 생기고 집이 모이면 길이 되지요. 저에게 길이란 모든 것을 연결하는 매개체이자 끊임없는 관심의 대상이에요.” 그의 사진에서 사람이 느껴지는 이유였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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