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건물의 표면과 빛, 선, 그리고 회화적 사진
- Hyejung Lee

- 2023년 8월 6일
- 4분 분량
정연심 - 홍익대학교 교수, 비평 및 기획
/
APRIL 2016
/
I. 캔버스가 된 건물의 앞과 뒤, 그리고 건축 표면 김우영은 뉴욕 SVA에서 사진을 공부한 뒤 무수한 사진을 찍어왔다. 그의 손을 거쳐 초상화, 풍경화, 광고 사진 등 다양한 영역의 사진이 완성되었고 국내외에서도 예술적 범주로서의 사진과 광고 사진 분야에서 폭넓게 인정받아 왔다.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갑자기 캘리포니아로 떠난 이후, 사진작가로서 김우영은‘여행’을 작업의 중요한 요소로 삼아온 듯하다. 그에게 떠남이란, 단순히 짐을 싸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가는 곳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관광지나 대도시의 쇼핑몰 등이 아니라 한 때는 많은 사람들이 거주했던 특정 도시거나 건물이다. 많은 사람들이 살았던 특정 도시, 특정 공간에는 사람들은 떠났지만 그 공간과 함께 했던 대자연의 바람과 빛, 흔적은 그대로 남아있다. 혹은, 한 두 사람 그 공간을 사용하기도 한다. 김우영 작가는 그러한 건물들의 앞과 뒤를 아주 끈기 있게 바라보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사진을 찍는다. 작가로서의 어떤 개입이나 사진 자체를 과도하게 변화시키기보다는, 건물의 표면 자체가 가진 흔적들을 사진으로 찍어내는데 집중한다. 김우영이 사진에 포착한 “Sunset Boulevard”와 같은 캘리포니아의 여러 거리나, 몬트리올 (Promenade du Vieux-Port), 휴스턴의 올드 콜럼버스 로드 (Old Columbus Road, Houston) 등은 마치 사람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관찰하듯, 사진작가가 바라본 도시와 거리의 모습이다. 특이하게도 사진 속에는 건물이 담겨있지만 대부분의 작업들은 그 건물이 위치한 대로 (boulevard) 나 거리 명이 명시되어 있다. 건물 이름 대신 특정 거리 이름을 써 내려가면서 건물의 정체성과 위치를 동일하게 바라보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건물의 앞부분, 즉 파사드의 일부와 건물의 뒷부분에는 두 가지의 흔적들이 발견된다. 빛이 자연스럽게 투영하여 음영 속에 묻어 있다. 사진 작품은 싱글 작품이 아니라, 때로는 같은 거리를 찍어 나란히 여러 작품으로 배치시켰다. 사진작가 베허 부부가 찍은 '유형학' 사진처럼, 김우영의 사진에는 장소와 공간 등에 대한 유형학적 배치와 사진사적 스토리가 담겨있다. 이러한 사진에서 느껴지는 두 번째 특징은 건물들의 표면에 있는 컬러풀한 색상과 선의 흐름이다. 회색 빛을 띠는 어두운 도로의 컬러, 건물의 표면을 덮고 있는 색, 이러한 면을 연결하는 도로의 선과 건물의 선은 도시 공간을 찍은 김우영의 작업을 회화적 추상화로 만들어 내는 예기치 않은 미적 결과물이다. 김우영은 한국과 뉴욕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캘리포니아에 오랫동안 거주하면서 캘리포니아 특유의 빛과 대자연의 호흡 등을 사진에 담아왔다. 나는 그의 작업이 미국 서부 현대 작가들의 작업에서 보이는, 빛을 바탕으로 한 추상화와 자연스럽게 교감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회화적 추상, 회화적인 선과 면, 공간의 만남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미국 동부의 미니멀리스트 작가들이 모노크롬한 색을 이용하고 산업 재료에 탐닉했던 것과 달리, 제임스 터렐과 같은 서부의 미니멀리스트 작가들은 뉴욕의 미니멀리스트들이 경멸했던 자연과 빛, 그리고 강렬한 색에서 미적 희열을 느꼈다. 뉴욕 미니멀리스트들이 사랑했던 엄격하고 엄정한 미학적 취향, 그리고 갤러리 공간 (화이트 큐브) 안에 어울리는 조각 대신,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은 실내 공간 대신, 자연과 빛, 색을 찾아 나섰다. 서부 미니멀리즘의 특징을 생각하면 김우영의 사진 작업은 빛과 자연, 그리고 추상적 색채, 다양한 건물 표면의 흔적을 재발견하는 일이다. II. 김우영의 사진적 행위: 회화적인, 추상적인 김우영의 작업에 서울에서 활동하는 작가가 제작한 작품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일종의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이전에 전시한 김우영의 개인전 내용과는 차별화된, 상당히 변화한 지점이다. 유형학적인 관심사는 이전 사진에서도 엿보였지만 도시 공간과 건물 자체를 또 다른 회화적 공간으로 변화시킨 점은 차이가 있다. 이러한 특징은 그의 작업이 사진 같으면서도 회화 같은, 묘한 경계의 틈을 오가게 한다. 이러한 경계의 와해 속에서 선과 색, 빛이 상당히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또 절제되어 있다. Boulevard전에 전시된 많은 사진들 중,“E 6th St”시리즈는 흑백의 추상화를 연상시킨다. 건물의 표면은 회화적 붓 터치가 캔버스를 켜켜이 덧바르는 효과처럼 보인다. 즉, 건물의 표면은 캔버스의 표면으로 환원되어, 물감이 자연스레 표면 속에 스며들어 있는 듯하다. 이는 최근 세계적으로 전시되는 한국 단색화의 추상적 세계처럼 회화적 색채와 건축 표면의 색채가 기묘하게 우리의 눈에서 연상 작용을 일으킨다. 서구인들의 눈에 그의 작업이 아주 한국적이라 보이는 이중성이 이러한 특징에서 엿보이는 것이다. 김우영의 사진 작업을 계속 보고 있으면,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는 세부적인 요소들이 점차 드러난다.“Eden Garden”에서는 첫눈에 보이지 않던 사람들의 흔적이 창문 너머로 느껴진다. 또한 다른 작품들에서는 장식적인 프레임이나 건물의 구조 등 자세한 디테일을 보여주면서 도시와 건물의 역사를 그대로 제시한다. 백 년도 넘은 건물들도 여기서 발견된다. 한때는 많은 사람들이 살았던 도시 공간에는 어반토피아를 찾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녹아있으며, 미국 이민의 역사 등도 여기에 있다. 지금은 텅 빈, 때로는 폐허가 된 건물들은 찾아나서는 김우영에게 여행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특정 건물을 찍은 그의 작품은 그 도시의 거리 이름이 캡션의 제목으로 지어진다. 그에게 여행의 경로, 여정 (itinerary of travel) 을 지정하며 이렇게 연결되는 장소는 사진적 행위가 각인된 특정 공간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는 과거에는‘있었다’는 흔적을 지시하는 가장 정직한 행위로 인정받아왔다. 여전히 김우영에게 사진은 지나간 흔적, 행위, 역사를 찾아나서는 민족지학적 (ethnographic) 행위 자체로 의미를 갖기도 한다. 유형학적 사진작업이 여전히 그에게 중요한 작업의 일부인 점은 여행이 그에게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과 같다. 사진의 결과물로는 알 수 없는 빈 틈, 그리고 빈 여정들을 우리는 읽어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를 단순한 여행사진, 장소의 기록으로 볼 수 없는 점은 그의 작업 과정에서 쉽게 발견된다. 무수히 많은 사진을 찍은 이후, 그는 컴퓨터에서 카메라 렌즈로 포착할 수 없었던 세부를 모두 확인하고 이 안에서 사진적이거나, 회화적인, 또는 추상적인 선과 면을 발견한다. 여행은 김우영 작가가 작업실에서 자신이 찍은 사진들을 재발견하고 이미지와 교감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작업까지 모두 포함한 결과물이 김우영의 사진 작업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러므로 김우영의 사진 작업은 때로는 너무 사진적이다. 그리고 때로는 회화적, 추상적이다. 때로는 여정 자체가 수행자의 반복적 제스처를 반추하게 한다. 캘리포니아, 혹은 한국적인 특징도 오버랩된다. 이러한 경계의 틈 속에 위치한 그의 사진을 이번 <김우영의 개인전>에서 발견할 수 있다. 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