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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같은' 풍경이 주는 고요... '김우영 사진전'

  • 작성자 사진: Hyejung Lee
    Hyejung Lee
  • 2023년 8월 7일
  • 3분 분량

임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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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021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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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나가면서 중얼거렸다. “그림 아니었어?” 회화 같지만 분명 사진이다. 전통 한옥의 선과 면, 눈 덮힌 순백의 사찰, 광활한 숲과 대지 등 태곳적 자연의 풍경을 렌즈에 담았다. 왜 사진 같은 느낌이 나지 않는 걸까. 가장 큰 이유는 ‘그림자의 부재’다. 사진가 김우영은 화면 속 그림자를 없애기 위해 일부러 새벽에 출사를 나간다.동 트기 전 무렵의 세상은 고요하다. 아직 완전치 않은 태양은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다. 흐린 날과 눈이나 비 오는 날도 마찬가지다. 그림자가 없는 순간을 노리고 카메라를 들이댄다.

“어디서 찍었어요?”

십중팔구 제기되는 질문이다. 영혼을 담아 찍은 사진도 피사체가 주는 느낌에 오롯이 집중하기보다 “저기가 어딜까?”에 관심을 갖는 게 대다수 관객들이었다. 촬영 당시의 감동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다다른 결론이 ‘그림자 없애기’였다. 적어도 그림을 보면서 “어디서 그렸어요?”라고 묻는 관객들은 많지 않으니까…. 평면 회화 작품인 줄 알고 한참을 응시하며 빠져드는 관객들을 보면 ‘찰나의 예술’을 만드느라 기다리고 기다린, 인고의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왜 자연인가?”

어떻게 하면 한국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 고민했다. 오랜 외국생활에서 온 근원적 반응이었다. 미술사학자 혜곡 최순우(1916~1984) 선생의 저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가 촉매제로 작용했다. 한국을 찾을 때마다 전국의 사찰과 사원을 다니면서 한국의 점과 선, 풍경을 찍었다 마음을 울리는 장면을 포착하는 건 쉽지 않았다. 무엇이 한국적인 것인지, 한국의 아름다움이란 어떤 것인지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가닥을 잡을 수 없었다.

“소쇄원과의 운명적 만남”

우연한 기회에 초대를 받아 전남 담양의 소쇄원에 갈 일이 생겼다. 한겨울이었다. 폭설이 내리는 바람에 그만 갇히고 말았다. 하루를 묵었다. 다음 날 새벽 눈을 떴는데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흰색 도화지를 펼쳐 놓은 것처럼 정말 눈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씩 눈이 익숙해지면서 대상이 선으로 펼쳐지는데 특별한 경험이었다. 바로 이거로구나! 나무, 흙, 돌로 만들어진 비대칭적이면서도 조화로운 그렇다고 무질서하지도 않은 선과 면의 추상화를 보면서 오랜 기간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았다.

기하학적이면서 경직되고 긴장감을 조성하는 서양건축의 면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전통 기와의 아름다움, 한옥의 구조와 벽면, 눈 덮인 정원의 풍경이 가슴 속에 들어와 박혔다. 그때 그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봄과 여름, 가을의 화려함보다 쓸쓸한 겨울이 주는 신비감에 매료돼 백지에 그림을 그리듯 새벽 겨울의 원초적 풍광을 여태껏 카메라에 담고 있다.

“JJ중정갤러리에서 해답을 찾다”

김우영 작가 하면 화려한 도시 이면의 쓸쓸한 풍경, 점점 사라져가는 도시의 일상을 담는 사진 작업으로 유명하다. 6~7년 전부터 틈틈이 한국의 아름다움과 한옥의 풍경을 담는 작업을 병행했지만 적절한 공간을 찾지 못해 묵혀오다 이번에 딱 맞는 갤러리를 만났다.

산 속 깊은 곳에 고즈넉히 자리한 JJ중정갤러리는 리드미컬하고 미니멀한 흑백 수묵화 느낌의 작품들이 주는 명상적인 기분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입지와 주변 환경이 너무 근사해 작가들 사이에선 ‘천국’으로 통하는 전시공간이다.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홍익대 도시계획과를 졸업했다. 사진은 취미였다. 서른 살에 진로를 결정하고 뉴욕으로 향했다. 사진 전공으로 학부와 대학원을 마치니 5~6년이 훌쩍 지나갔다. 귀국해 광고계에서 일했다. 10년 정도 활동하며 명성을 얻었지만 본업(사진)으로 돌아가기로 마음 먹고 미국에 다시 들어갔다. 2008년 무렵이었다. 3년 남짓 기간 동안 광활한 대지를 찾아 미 대륙을 가로 세로로 10번 넘게 횡단했다. 닥치는 대로 사진을 찍었다. 그때 받은 영감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작업의 원천이다.

2011년에 캘리포니아에 정착했다. 자본주의가 휩쓸고 간 도시의 쓸쓸한 흔적을 집중적으로 찍었다. 5~6년 정도 지나니 작업에 자신감이 붙었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전시를 이어갔다. 3년 전에는 한국에 작업실을 열었다. ‘두 집 살림’을 시작한 셈이다. 엄밀히 말하면, 한국 전시에 좀 더 공을 들이기 위해서다. 김우영의 트레이드 마크인 ‘도시 풍경’에서 나아가 ‘한국의 대자연’ 쪽으로 작업 영역을 본격적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이래저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다.

지금 JJ중정갤러리에 가면 폭설이 내린 계곡과 평야, 눈보라 치는 순간의 숲, 파도가 지나간 해안가 모래밭 등 대자연 속에서 생명 그 자체의 깊음과 광활함이 살아 있는, 사진작가 김우영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인간의 욕망과 현대사회의 구속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고요와 마음의 평온을 느껴볼 수 있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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