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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즈음 어디라도 족하리

  • 작성자 사진: Hyejung Lee
    Hyejung Lee
  • 2023년 8월 7일
  • 2분 분량

황수연 _ 산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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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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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의 사진을 마주하면 평면과 공간의 경계에서 잠시 길을 잃게 되어 얼마간을 서성이게 된다. 어딘가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을 것 같아 눈으로 더듬는 동안 소리가 들려온다. 고요, 적막의 소리 눈 앞에 보이는 네모난 사진 한 장, 소쇄원 숲은 곧 내릴 눈의 기운을 감지하였을 지난 밤과 쏟아질 눈의 무게를 지긋이 견딜 내일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표정으로 시간 꾸러미를 스르르 풀어 놓는다. 절대 적막의 소리를 들으면서 시간이 성글게 쌓인 사이로 이 네모난 사진이 내미는 따스한 손을 잡으면, 흑백 너머로 수묵화가 번진 자국처럼 색이 드러나고, 정물이 아닌 움직이는 숲이 펼쳐진다. 흑백 사진을 찍지 않는다는 작가의 무채색 작품에서 따스함이 전해지고, 붉은 색에서 서늘함을 감지할 수 있는 경험은 존재하지 않는 시간을 반복적으로 기억하면서 찰나가 영겁이 되는 지점까지 확장하는 작가의 역량 덕이리라. 모든 생명이 그러하다며 한 치의 오차를 허용한 너그러운 한옥이 시공간을 열어두듯, 김우영이 담은 한옥은 여백을 통해 보는 이에게도 공간을 내어주는 넉넉함이 있다. 편안한 선과 투박한 점 사이가 쉴 곳이 될 수도, 채울 곳이 될 수도 있다며 슬그머니 열어두는 문은 나를 들여다 보는 관조로 이어진다. 나이테를 그대로 드러내며 박제된 시간을 처연히 내 보이는 붉은 목재는 그 위에 다시 시간의 누더기를 덕지덕지 입고 있다.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고 끝이 아닌 동양의 순환적인 시간을 가만가만 읊조리고 있다. 해걸음을 기다리며 말간 가슴을 드러내는 연꽃이 그어 놓은 부드러운 사선을 따라가면 백 년일지 천 년일지 모르는 시간을 품은 진흙 바다가 그윽이 다가온다. 그곳 어디에서 숨 삼키며 백 년인지 천 년인지를 헤아렸을 작가의 그윽한 기쁨이 연잎 곡선을 따라 춤추듯 흐른다. 김우영은 나무와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 사람이다. 언덕 어디메에 서 있을 것 같은 긴 선이 아름다운 소나무는 그 끝이 어디인지 보여주지 않는다. 무언으로 뱉은 언어가 가 닿았는지 보려고 올려다 보았을 테지만 나무 사이로 보이는 말간 하늘이면 족하리. 저 끝까지가 아니어도 그 즈음 어디라도 족하리.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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