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H
- Hyejung Lee
- 2023년 8월 6일
- 4분 분량
신혜경 - 선재미술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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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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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 이중적 구조의 변주가
내가 김우영을 처음 만난 것은 뉴욕 소호지대 그의 아파트에서였다. 파리의 아기자기한 공간에 익숙한 나로서는 뉴욕은 자체로서 신기하고 낯선 공간이었고, 김우영의 아파트는 그런 뉴욕적 공간을 밑그림으로 삼고 있었다. 공간은 비워져 있는 곳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공간은 하나의 개념이고, 각 공간은 자기만의 감성과 색깔을 가진 구체적인 물체이다. 어떤 거리에 들어서면 따뜻한 느낌이 들고 어떤 거리에 들어서면 차가운 느낌이 든다.
로마의 뒷골목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불현듯 펼쳐지는 거대한 광장은 남성적으로, 오렌지 가로등 밑의 파리의 밤거리는 여성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소호거리의 김우영의 공간은 작품을 직접 대하기 전, 그의 작품 세계를 은유적으로 느끼게 하는 물체였다.
감성적 공간을 수집하는 작가 김우영은 바다에서, 하늘에서 젖은 도로에서 자신의 감성을 자극하는 공간을 수집하러 다닌다. 공간의 정형미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순간 어느 장소가 들어 올린 감정, 그 자체를 끊임없이 드러내는 공간을 선택한다. 비에 젖은 누런 종이 봉지는 작가의 허약하고 소외된 감정상태를 표현하는 듯, 젖은 아스팔트 위에 처연하게 놓여있고, 새벽바람에 뒹굴리고 바닷물에 젖었다가 말라버린 해초는 작가의 수많은 기억의 편련을 새긴 듯 본래의 본성을 잊은 채 화석화되어 마른 모래 언덕에 놓여있다.
작가는 자연 속에서 어떤 특정한 주제를 찾기보다는 목적 없는 여행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대변하는 상황을 발견하고 이를 사진 매체를 통해서 표현한다. 작가의 최초의 그리고 궁극적 감정을 화석화하고 수집한다고나 할까... 그가 표현 수단으로 쓰는 창작 언어는 사진이다. 사진은 어떤 의미에서 소유하고자 하는 물체, 사람, 아니면 상황이나 감정까지도 복재의 힘으로 수집할 수 있다. 사진의 ‘살아 탱탱한’ 복제성은 실제의 소유를 대체하고, 사진이 갖는 오브제적인 본성은 수집가의 소유욕을 충족시킨다. 작가는 사진기를 통해 세상을 발견하고, 사진의 고유성으로 말미암아 그의 ‘감성적’ 발견물을 즉각적으로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수집가는 희귀하고 값나가는 물건을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표상으로서의 공간을 수집한다. 어떤 수집가는 이상한 사건을 찾아서 돈을 주고 사들인다고 하던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희생’에 나오는 우체부의 얘기가 생각난다. 사건을 수집한다는 것이 불합리하듯, 감정을 수집한다는 것도 불가능하게 느껴지지만 그의 작품 앞에 서면 우리는 무엇보다 차곡차곡 수집된 듯한 감정의 편린들을 느낄 수 있다.
빛에서 색으로, 와이드에서 마이크로로
1989년 공간화랑에 전시되었었던 김우영의 사진들은 인공적인 요소가 가미된 도시 주변의 풍경을 담았다. 새벽 미명의 도시를 달리는 신작로, 낮과 밤이 서로를 섞는 짧은 시간대의 노오란 도시의 외진 풍경들, 카뮈의 ‘이방인’에 나오는 오후의 낯선 광선이 작열하는 공사 중의 도시 변두리 풍경들은 우리가 흔히 접해왔던 풍경 사진은 아니다. 이 사진에는 와이드 렌즈의 물리적 왜곡성이 도시의 인공성과 낯섦을 극대화하는 데 사용하였고, 빛의 예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사진이 표현할 수 있는 빛의 다양함을 모색하는데 작가는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사진을 보면 작가의 기다림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빛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작가. 원하는 빛을 찾아 여명에 자신의 방을 빠져나가는 작가를 우리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빛’에 몰입하던 시기를 거친 작가는 ‘색’의 시대에 진입하게 된다. 이방의 나라에 온 작가는 학교 암실에서 하루 15시간 이상씩 사진과 씨름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방황했다고 한다. 어두운 이방의 암실이 엄마의 자궁처럼 편하게 느껴질 때까지, 작가는 또한 암등까지 금지된 완벽한 어둠 속의 암실에서 그 침묵의 장소에서, 자신의 내재적 장소를 모색했다고 한다. 이런 작가가 사진에 쓰이는 화학약품의 액체와 모체의 양수를 은유적 등가물로 묶으면서 창작의 기쁨, 창작의 생명력을 말한 것은 뜻밖의 일이 아닐 것이다. “화학 약품 속에서 이미지를 드러내기 시작하는 사진은 양수 속에서 부유하는 생명을 연상케 한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1993년에 발표된 ‘자연과의 대화’라는 카탈로그를 통해 본 그의 사진은 기존의 컬러사진은 아니다. 화학 약품과 빛을 물감과 붓처럼 사용한 그의 조형적인 사진에는 구상성과 추상성이 절묘하게 공존해 있고 면의 분할 방법도 1950년대에 일어났던 색면회화 운동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형태는 극도로 단순화되고 화면은 거대한 규모로 확대화됨으로써 색이 주는 힘과 조형성을 부각시킨 것이다. 김우영의 이 시기 작업은 사진의 구상성의 힘을 과감하게 버리고 추상화된 색의 힘을 부가시키는데 초점을 두었다. 이번 전시 작품에서는 ‘색’보다는 색채회화파의 크기성이 유달리 강조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진은 사람이 쉽게 손으로 다룰 수 있는 크기로 제작되어 왔다. 현대 사진은 기존의 크기를 버릴 뿐 아니라 큰 정도 자체가 표현의 구성 요소가 되었다. 김우영의 사진은 우선 그 크기로 압도한다. 거대하게 확대된 그의 사진 앞에서 나는 눈이 아닌 몸 전체가 그의 사진 속으로 빨려 들어가 김우영이라는 감성의 풀밭을 맨발로 나들이하는 듯하다. 여기에 그의 사진의 힘이 있다. 뉴욕에서 봤던 크고 빈 그의 공간, 직선만이 허용된 기계적 공간 안에 감성의 풀이 조용히 뿌리를 내리고 있던 그의 아파트가 상기된다. 김우영의 사진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공간을 압도하는 사진 크기와 엄청난 그의 작업량에 반해서 그의 이미지는 예민하고 섬세하다. 김우영의 초기 작품에는 와이드 렌즈의 거시성이 많이 드러나지만, 그의 시선은 점점 작고 예민한 부분으로 집중된다. 마이크로 렌즈에 비치는 세상의 비밀스러운 형태를 찾아다니는 그는 빗물에 우연히 떨어진 기름 한 방울에 반사하는 도시의 현란한 빛을 포착하고 시멘트의 완강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자라나는 한 줄기 잡초의 생명력에 시선을 멈춘다. 요즈음 그의 관심대상은 풀, 꽃, 흙, 돌, 잎사귀, 나뭇가지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하는 자연물과 공, 배수관, 철판 등 인공적이 오브제다. 그러나 자연물과 인공물을 접근하는 그의 자세는 비슷하다. 기억의 편린들이 조용하게 자리 잡고 있고, 이 침묵 속에 남성과 여성이 에로틱하게 병치되어 있다.
김우영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물의 형태적 아름다움을 표현하기보다는 사물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생명, 죽음, 삶의 흔적과 기억들이 함축된 사물들을 선택해 이미지화하면서 사물이 갖는 다양한 ‘삶’을 보여준다. 김우영의 사진은 여러 관점에서 이중성을 드러낸다. 남성적인 거대한 형식과 여성적인 섬세한 내용, 끈질긴 생명력에 대한 집착과 죽음에 대한 예감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또한 그의 사진은 스턴 형제의 작품을 연상케 하는 자유롭고 운동감 있는 서구화된 조형성과 명상적이고 동양적인 내용이 공존한다. 앞으로 ‘인간’을 테마로 작업하겠다는 김우영, 그의 작업은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인물화는 아니리라. 인간의 이중적 구조가 그의 어법으로 형상화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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