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 _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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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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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의 시선
지금쯤 그는 네바다 사막을 건너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 사막 깊숙한 곳에서 아득한 별을 바라보거나 아니면 사람이 살다가 이주해 소멸한 작은 마을에서 새벽빛에 보라색으로 물드는 건물을 촬영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 혼자일 것이다. 고독하지 않으면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으니 말이다. 늘 떠나고 돌아오고 또다시 떠나는 김우영 작가(1960~ )는 한국과 미국에 각각 집과 작업실을 따로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중 하나인 청계천 세운상가 작업실을 찾았을 때 9월이 가기 전에 미국으로 떠날 예정이라고 했다.
세운상가 5층에 있는 그의 작업실 창문으로 청계천이 내려다보였다. 또한 세운상가 1층에서 투명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올라올 때는 종묘가 한눈에 들어왔다. 아침 일찍 청계천을 따라 광화문까지 산책한다는 그는 도심 속에서 자연과 고궁을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도심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적막하고 조용해 3년 전에 이곳을 작업실로 선택했다. 그러나 막상 그가 한국에 머무는 기간은 1년 중 3개월에 불과하다. 나머지 9개월은 LA에 있는 작업실과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집을 거점으로 미국 서부를 중심으로 사진 작업을 진행한다. 이번엔 두 달간 시애틀, 시카고, 미시간주, 뉴욕까지 다녀올 것이라고 했다.
“저는 한번 촬영한 곳을 반복하여 찾아가는 습관이 있어요. 변화한 흔적을 발견하고 그 흔적을 사진으로 남기는 게 재미있어요. 특히 한적한 마을에 다시 갔을 때 그동안 지붕이나 벽을 다시 페인트로 색칠해 놓았거나 이런저런 변화들이 눈에 띄면 가슴이 설레요.”
그는 한 번 촬영한 지역을 다시 찾아가 시차를 두고 달라진 풍경을 보는 것이 좋다고 했다. 이번 9월에 나우갤러리에서 전시한 사진들이 그런 작품들이었다. 마치 색면화가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선과 면, 색이 조화롭고 또한 원색의 화려함이 단순한 선과 면으로 인해 추상적으로 느껴진다. 사진에 사람이 등장하지 않았지만 누군가가 공들여 색을 입힌 손길을 통해 사람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작가는 그곳에서 만날 사람은 없지만 마치 고향을 찾듯이 반복하여 찾아가는 동력을 얻고 또한 오늘의 촬영을 통해 다음에 다시 그곳을 찾아갈 이유를 만드는 것 같다.
“한국에 머물다가 미국에 있는 작업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나의 공간인데도 처음엔 어색해요. 그런데 어색함이 서서히 편안함으로 바뀌어 가는 시간이 좋아요. 차츰 주변의 소리가 귀에 들어오고 그곳의 냄새가 코에 익숙해지면서 편안해지면 다시 떠나요.”
어쩔 수 없는 방랑벽이다. 그는 일상의 편안함과 익숙함보다 외로움, 어색함. 낯섦, 새로움 같은 감정을 더 사랑하는 것 같다. 늘 길 위에 서 있고 길 위에서 새로운 것과 조우하고 그것을 사진으로 남기는 일, 그런 작업이 그를 충만하게 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의 그런 기질은 이미 20대 젊은 시절부터 엿보인다.
도시계획에서 사진으로
그가 홍익대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한 것은 훗날 그의 사진 작업에 밑거름이 되었다. 학부 시절에 카메라를 들고 도시의 골목을 찾아다니며 청계천이나 명동 등을 촬영할 때 주변의 사진가로부터 “너, 사진 해도 되겠다!”라는 부추김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해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방송국을 기웃거리기도 했고 아르바이트로 음악 DJ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뜻밖에 자신이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사진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이끌어 홍대 대학원에 입학하는 계기가 되었고 서른 살에 뉴욕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사진가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뉴욕 School of Visual Art 학부 3학년으로 편입하여 컬러프린트 작업까지 사진을 제대로 공부하게 되었어요. 얼마나 암실 작업이 재미있던지 집에 가기 싫어서 몰래 암실에 숨어 있다가 밖에서 문을 잠그고 모두 퇴근하면 그때 살며시 나와서 밤샘 작업을 하곤 했어요. 뉴욕이 너무 좋아서 잠이 오지 않았어요. 시간이 너무 아까웠거든요.”
그는 밤새 작업하고 아침에 암실 문이 열리면 밖으로 나와 뉴욕 뒷골목을 촬영하고 다녔는데 그 시절이 너무 좋고 너무 행복했다고 말한다. 그의 열성이 눈에 들어왔는지 한 학기 만에 선생님의 배려로 암실 조교가 되고 장학금도 받고 나중엔 갤러리를 소개해 주어 전시도 하는 등,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뉴욕에서 스튜디오를 하기까지 5년간 그는 사진에 흠뻑 취해 살았다.
“92년부터 3년간 소호에 커다란 작업실을 얻어 친구와 둘이서 대형 작업을 했어요. 그런데 당시에는 미국에 있는 학교를 한국에 유치하는 게 유행이었나 봐요. 내가 다닌 학교인 SVA를 유치하려는 한국 대기업이 있어서 그 일을 도와주다가 그들의 초청으로 한국에 1년 계약으로 나오게 되었어요.”
김우영 작가는 1995년에 역삼동에 스튜디오와 집과 자동차를 지원해주는 제안을 받고 서울에 와서 패션사진을 비롯해 대기업 애뉴얼 리포트 제작 등 상업사진 분야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계약이 연장되고 맹렬하게 일에 매달리면서도 그는 상업사진과 예술사진을 다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의뢰받는 사진을 처리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정도여서 4~5년간 자신의 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2000년이 되면서 디지털이 등장했어요. 촬영 과정을 내 의지로 조정하다가 디지털에 의존하는 환경으로 바뀌니까 상업사진에 흥미가 반감되었어요. 타인의 기준으로는 화려하고 성공적인 삶이었지만 자꾸 회의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이것이 내가 원하던 삶인가? 다시 뉴욕에 가려니 그동안 친구들은 이미 작가로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왠지 뉴욕으로는 가기 싫더라고요.”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한국에서 누린 상업적인 성공을 내려놓고 사진가의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2007년에 완전히 한국을 떠났다. 1990년에 서른의 나이로 유학을 위해 뉴욕으로 떠날 때와는 달랐다. 뉴욕과 반대편인 서부의 캘리포니아로 가서 약 3년간 혼자 거칠고 광대한 사막을 여행하면서 울기도 했다. 그렇게 3년이 지났을 때 미국 서부의 대자연은 그에게 복원하는 힘을 가르쳐주었다. 험하고 거친 대지에서 생동하는 자연의 에너지를 느꼈고 그즈음에야 비로소 카메라 장비를 재정비했다.
“화려함과 깊은 고독을 다 겪고 카메라를 잡으니 표준렌즈만으로 나의 가슴으로 다가오는 것들을 표현해보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네바다 사막 근처에 살면서 서부의 자연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김우영 작가는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땅’을 찍기 시작했고 그 후 물과 바위 등 대자연의 꿈틀거리는 에너지를 사진 찍으면서 비로소 고통과 고독이 해결되고 토하듯이 행복감이 솟구침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자연과 대화하며 자연에 몰입하니 성공에 함몰되고 좌절에 방황하던 시간에서 벗어나 이제부터는 진짜 자신이 원하는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항상 길 위에 서 있었어요. 길을 가다 보면 만나는 게 있습니다. 고스트 타운이 된 도시를 재해석하는 작업이 시작된 것도 그랬어요.”
2014년 LA 아트페어에 왔다가 그의 작품을 본 박여숙화랑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전시 초대도 하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부터 2년마다 한국에서 전시하게 되면서 다시 한국을 찾게 되고 그것이 한국의 고건축물에 대한 작업으로 이어졌다.
“엄청나게 눈이 내린 날 소쇄원을 보고, ‘이거구나!’ 감탄했습니다. 나는 선(線)을 중시하는 작업을 하는데 우리의 전통적인 선을 본 거죠.”
한옥을 찍다 보니 스님들도 많이 알게 되어 전국을 다니며 사찰을 찍게 되고 한옥 사진이 ‘최순우 옛집’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그 이후 중국을 방문해 신장과 티베트를 촬영하고 일본에서 이방인의 시각으로 본 작업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는 등, 그의 시선은 이제 미국에서 동양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건 김우영이구나!”
모든 예술가가 그러하듯이 그도 작품을 보았을 때 “이건 김우영이구나!” 단박에 알아볼 정도로 그의 정체성이 잘 드러나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가 30여 년 동서양을 넘나들며 체득한 시각 체험과 그에 앞서 타고난 미적 감각과 그리고 엄청난 노력이 이제는 ‘김우영’이라는 브랜드를 확고하게 형성해주었다. 항상 현장의 조건과 상황이 최고의 순간일 때를 잡아내는 그는 한국은 겨울에 산광이 좋아서 올해도 연말에 한국으로 돌아와 마치 화선지의 느낌 같은 겨울 한국을 촬영할 것이라 했다.
반면, 미국의 서부는 사막기후라서 건조하고 빛의 반사가 아름답다고 말한다. 사막에서 만나는 폐허에서도 그가 잡아내는 색채는 환상적이며 몽환적이다. 그는 빛과 색감을 살리면서 한편으로는 그림자를 집어넣지 않기 위해 가장 적정의 순간을 기다린다고 했다. 그의 사진집에 나온 글처럼 “시간에 쫓기지도 않고 시간을 추적하지도 않으며 어떤 적중의 시간을, 명중의 시간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서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것이다.
“내겐 사진이 찰나가 아니라 긴 시간의 흔적입니다. 매년 찾아가면 자연이든 도시든 무생물과도 대화가 되는 느낌이 들어요.”
소재는 달라도 내용은 같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몽골의 초원이든 알래스카의 설원이든 어디에서든 그가 추구하는 것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과거에서 시간의 흔적에 집중하면서 그것에 내재하는 역사와 아름다움을 찾는 작업이다. 그동안 미국과 홍콩, 서울 등에서 약 30번의 개인전을 열면서 도시의 빈 거리와 대자연의 원초적인 생명력, 전통 한옥의 조형성 등을 보여주었는데, 이번에 나우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서는 주로 건축물의 선과 색을 강조한 단순하면서 명쾌한, 사진과 회화의 중간쯤에 속한 ‘사진 회화’를 선보였다.
“젊은 작가들이 젊었을 때 해야 하는 경험을 충분히 했으면 좋겠어요. 학교에, 책상에 앉아있지 말고 많은 경험을 쌓으면 그것이 나중에 작업할 때 깊이를 준다고 생각해요. 앉아서 지도를 보지 말고 자리에서 떠나길 권합니다. 카메라는 도구일 뿐이죠. 끊임없이 새로 시도해야 새로운 결과물이 나와요.”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하다. 그는 앞으로 스틸과 함께 동영상도 같이하고 싶다고 말한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과 열망이 깊은 그가 새해부터는 한국과 미국에서 지내는 시간을 반반으로 나눌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한국과 일본, 중국에서 작업량을 늘리겠다는 뜻이다. 젊은 날의 시행착오와 그로 인해 더욱 단단해진 김우영 작가가 추구하는 정치(精緻)하고 세련된 아름다움, 또한 그 너머의 철학과 역사성이 담긴 작품이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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